위안부 피해자, 일본 허락받고 돈 받는다?

  일본 요구 수용한 정부…소녀상 철거도 시간 문제일 듯  
일본 정부가 ‘화해 치유 재단’에 거출할 10억 엔의 자금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개인에게 배당될 지원금이 일시금으로 지급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일본의 요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17일 일본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 출석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일본이 거출하는 10억 엔이 “현금을 건네는 것에 충당될 가능성은 부정되는 것이냐”는 오노 모토히로(大野元裕) 민진당 의원의 질문에 “이 돈은 배상 혹은 위로금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전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로서 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노 의원은 이에 “이것은 위로금‧배상금과 같은, 다시 말해 현금으로 지불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노 의원은 이어 “거출된다고 일컬어지는 자금의 구체적인 사업 또는 거출처를 결정할 때 우리 쪽에 발언권이 확보돼 있느냐”고 물었고, 기시다 외무상은 “사업은 양국 정부 간에 합의된 범위 내에서 실시하도록 되어 있고,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외교 당국 간에 확실하게 조정해 갈 것”이라고 답했다.  

오노 의원은 “우리 쪽이 발언권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냐”고 재차 질문했고 기시다 외무상은 “양국이 협의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우리나라도 한국 정부와 확실하게 협의를 해서 구체적인 대응을 결정해 가게 될 것”이라며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합의한 내용을 (구체적 사업으로) 실시하게 된다”고 밝혔다.  

“기금의 사업에 대해 보고 및 모니터, 평가 등이 이뤄지도록 담보돼 있냐”는 오노 의원의 질문에 기시다 외무상은 “요는 이 사업에 관해서는 양국이 협력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도 확실하게 협의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애초부터 피해자가 특정한 금액을 일괄적으로 지급받는 방식을 거부했고, 한국 정부는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피해자별 맞춤형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일괄 지급 불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일본 정부가 자금 사용처에 대해 관여하겠다고 밝힌 만큼, 피해자 개인이 자신에게 할당된 지원금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피해자가 원하는 사용처가 일본 정부 및 화해 치유 재단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경우에만 이에 맞춰 해당 금액이 지급되는 방식으로 지원금 집행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1억 원 규모의 금액은 지원금이 아닌, 일종의 ‘바우처’나 ‘쿠폰’ 형식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 합의 및 10억 엔 거출이 지난 1995년 일본 정부가 민간과 함께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조성‧발족했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보다 진일보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 여성기금 당시 일본 정부 예산은 생존자의 경우 3000만 원이었고 민간 기금을 포함하면 5000만 원이었다”면서 이번 합의가 “그동안의 일본 입장 감안할 때 상당한 진전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성기금은 당시 ‘사과금(atonement money)’이라는 명목으로 수령을 원하는 피해자에 한해 개인 당 200만 엔을 일괄 지급했으며 여기에는 총리의 서한도 포함됐다. 또 의료‧복지 지원사업의 명목으로 300만 엔 규모를 지원했다.  

여성기금은 이번 지원금보다 절대 액수는 적지만, 피해자가 자신에게 배당된 자금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번처럼 피해자들이 지원금을 어디에 쓸지 재단에 미리 보고하고 재단이 이를 일본 정부와 함께 심사한 뒤 지원금 집행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아도 됐던 셈이다.  

소녀상 철거,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 아니라더니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지원금 지급 방식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합의 당시 언급됐던 ‘소녀상’ 문제와 관련,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소녀상 문제와 관련, 지난해 위안부 합의 당시 양측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를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합의 발표 이후 이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외교부는 수 차례 “소녀상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라며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이 10억 엔을 거출하기로 결정된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해 위안부) 합의 이행을 언제 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지금은 소녀상 문제를 거론하거나 그와 관련해서 관련 단체와 협의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며 소녀상 이전 및 철거는 ‘시간’ 문제라는 점을 시사했다.  

결국 정부가 최초 합의문과 충돌되는 입장인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뜻을 수차례 밝힌 것은 당장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했던 것으로 관측된다.